티스토리 뷰

Phnom Penh, 2008

70달러짜리 시계와 짓뜨라

안경난로 2011. 6. 4. 17:58

프놈펜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공식일정으로 현지 리더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앞으로 프놈펜에서 계속 지내면서 이들과 함께 어린이 사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름도 익히고 낯도 익히는 그런 자리였다. 다들 어색하게 자기소개하고 미션에 대한 얘기, 비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그랬었다. 정말 웃겼던 건 자기 소개할 때 우리는 크마에어로 “쭘립 쑤어.(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걔네들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서로 주고받았던 거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서로 이름도 익히고 조금씩 친해졌을 때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짓뜨라가 갑자기 내 시계를 보더니, 생뚱맞게 한국어로 “이 시계 얼마예요?” 라고 물었다.

이 시계는 예전에 부모님하고 같이 가서 7만원 주고 산 시계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짧은 저질 영어로 간단히 말했다.

"Seventy dollar. cheap, cheap."

이렇게 말했더니, 짓뜨라가 깜짝 놀라더니 다시 말했다.

"Expensive"

그 이후 여러 가지 얘기를 계속 주고받았는데, 짓뜨라는 계속해서 자기 한국어 잘한다, 나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이런 류의 얘기를 자꾸 말했었다. 그들과의 만남이 다 끝나고 숙소로 다시 돌아오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생각했었는데, 짓뜨라가 왜 그런 말을 자꾸 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다음날 조용히, 원일형한테 이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원일형이 여기의 청년들에게 70달러라는 돈은, 1년 내내 알바하면서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이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중·고등학교 교사의 한 달 월급이 50달러정도라고. 내가 차고 있었던 70달러짜리 시계는 짓뜨라에게는 정말 엄청나게 비싼 시계였던 것이다.

출국할 때, 상수형이 면세점에서 300달러짜리 아르마니 시계를 샀었다. 그 시계를 보고, 다시 내 시계를 보았을 때, 내 시계가 많이 초라해보였다. 그래서 내 시계를 조금 좋지 않은 시계, 싼 시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차고 있는 시계를 나는 싼 시계, 안 좋은 시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짓뜨라에게는 비싼 시계, 좋은 시계였다. 내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지금 우리는 항상 더 높은 것만 바라보다가, 현재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고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이 현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원하고 갈망하는 그런 현실이라는 것도 모른 채, 순간순간을 그냥 정말 아무 생각없이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다.

그래, 항상 조그만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Phnom Penh,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놈펜의 밤시장  (0) 2011.06.04
분타네 집에서의 홈스테이  (0) 2011.06.04
프놈펜의 메콩강  (0) 2011.06.04
프놈펜 교외의 풍경  (0) 2011.06.04
프놈펜으로 가는 하늘  (0) 2011.06.04